큰 누님의 죽음

   L.A에 살고 있는 큰 누님이 현지에서 한국 시간으로 2009년 12월 29일 09:30에 돌아가셨다. 향년 일흔 넷이다. 이로써 우리 10남매 중에 이제 일곱 명이 남았다.

누님 보다 두 살이 적은 큰 형님은 지난 2003년 6월 1일 돌아가셨다. 이에 앞서 막내 남동생 유욱은 1962년 당시 다섯 살 때 죽었으니 기억에도 가물가물하다. 큰 형님께서 졸지에 변을 당하셨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 누님의 죽음 시에도 어머님께는 알려드리지 않았다. 늙은 노모의 가슴에 자식을 묻는 아픔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다. 언젠가 서서히 아시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평소 아주 건강하신 편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활동하며 잘 사시었는데 갑작스레 뇌졸증으로 사망하신 것이다.
 

왼쪽 사진은 2010년 2월 현재 94세이신 어머님이 70정도 되셨을 때 누님이 사시는 L.A에 가셨을 때 누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 때 누님의 나이는 대략 50정도 되었으리라. 인생 일흔 넷이면 적게 산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고 보니 너무 허무하다. 더구나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당한 일인데다 뒷수습할 자식도 없이 훌쩍 돌아가시고 보니 가슴만 졸이며 있는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누님은 맏이답게 우리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헌신하셨다. 5~60년대 우리나라 농촌은 어디 할것 없이 넉넉하질 못했다. 어렵사리 번 돈을 집으로 부쳐 가계와 동생들 학비에 보탰다. 그 은공을 조금이라도 갚기 전에 홀홀히 떠나셨으니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미국 현지에서 화장을 하고 영가(靈駕 = 靈魂)는 충남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 용두산(414m)에 있는 탈해사(脫解寺)에 모셨다.

탈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 중 향천사(香泉寺)의 부속 암자이다. 1975년부터 현재까지 30년이 넘도록 현 주지 이종학 스님이 새롭게 중창하였다.

까까지른 절벽위에 지은 사찰 구조물들이 건축을 할 때 운송이 제일 문제였을 것 같아 스님에게 헬리콥터로 날랐느냐고 여쭤 보았더니 본인이 직접 지게를 이용해서 기둥이며 온갖 건재들을 져 올리셨다고 하니 가히 스님의 정성과 노력이 얼마나 지극했는가를 짐작할만 하다.

설날 바로 다음 날인 2010년 2월 15일은 누님의 49재 중 일곱 번째 마지막 재일이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염불을 올려 주시는 스님의 정성에 다리에 쥐가 날 정도지만 기지게 한 번 펴지 못하고 정성에 동참했다.

주지스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누님 부디 극락왕생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