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禮(가정의례)란 官禮, 婚禮, 喪禮, 祭禮를 총괄하는 의미로 일컫는 바 이중에서 관례는 현시대에 행하여지지 않고 있으며, 혼례와 상례는 보편적인 사람들은 일생에 한번만 겪는 일로서 나의 홈에서는 이 셋은 개념만 언급하고, 흔히 겪게되는 제례에 관하여만 기술토록 합니다.

관례와

계례

관례

관례는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음을 안팎으로 알리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성년식에 해당한다. 이 때, 남자는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그 위에 '초립'이라는 모자를 썼기 때문에 '관례'라고 하게 되었다.
15세부터 20세 사이에 정월 달 중에서 날을 정해 행한다.

근세에 와서 관례는 혼례와 혼합되어 부수적으로 행해지다가 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단발령이 강제로 내려지면서 광복후에는 점차 사라지고 현대에 와서 성년의 날을 제정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
 

계례

여자 역시 15세 내외가 되면 머리를 올려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의식을 치렀는데, 이를 '계례'라고 하였다.  

혼례


혼례는 성인 남녀가 부부로 결합하는 의례로 위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아래로는 자손을 후세에 존속시켜 조상의 대를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치르는 예로서 일생의례 가운데 가장 경축스럽고 중요하게 여겨서 '대례' 혹은 '인륜지대사'라고 불렀다. 원래 혼인의 혼(婚)자는 어두울 혼(昏)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옛날에는 음양이 만나는 저문 시간에 거행하였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혼인 제도의 변천을 보면, 부여에서는 일부일처제였고, 옥저에서는 돈을 받고 혼인하는 매매결혼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고려를 거쳐 조선조로 들어와서는 유교의 가르침에 의한 혼례가 유가의 예문에 따라 행해졌다.
   혼례는 남녀 두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관례를 갖는 것 뿐만 아니라 가정이란 공동생활을 통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례

임종에서 탈상할 때 까지의 모든 의식과 절차를 말하며, '禮記'에 상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상례의 유래는 아주 오래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조선시대 5백년 동안 엄격히 지켜왔으며 이로 인해 정치적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상례는 한 개인으로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통과의례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영원히 이별하는 분리의례가 된다. 상례를 중시하는 태도는 죽음을 단절로 보지 않고 또 다jesasunseo.htm른 연장이라고 보는 우리 민족의 인생관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 선조들은 죽음이 아주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인식하여 사람이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쓴다. 돌아가신 어른은 아주 떠나간 것이 아니라 항상 주변에 머물면서 후손의 일을 돌보고 간섭하며 이끌어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아 있을때나 죽었을 때나 한가지로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으며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생전 그 뜻을 추모하는데 의미가 있다.

제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부모를 섬기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살아 계신 동안에 봉양하며, 돌아가신 뒤에는 상을 치르고, 상을 마친 후에는 제사를 모시는 일이었다. 제례는 돌아가신 조상께 제사를 지내는 데 따른 절차와 예를 말하며, 같은 유교 문화권인 동양에서도 우리 나라가 조상숭배와 보은의 관념이 더 깊어 조선 오백 년 치국이념으로 형성되고 가신신앙(家神信仰)으로 승화되어 사회, 가정, 사고 구조에까지 확고하게 뿌리가 박혔던 것이다.
   제사의 근원은 먼 옛날에 천재지변, 질병, 맹수의 공격을 막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근세에 와서는 유교사상으로 조상을 섬기는 주요한 방법으로 가정마다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이 내용은 청소년 예절교실( http://sinjung.web.edunet4u.net/)의 일부를 인용하였습니다.